모아쓰기와 행간: 한글이 라틴 알파벳과 다르게 숨 쉬는 법
한글은 낱자를 모아 한 글자를 만든다. 그래서 같은 크기라도 획이 들어찬 정도가 글자마다 크게 다르고, 라틴 알파벳에 맞춘 행간을 그대로 쓰면 페이지가 답답해진다.
한글은 낱자를 옆으로 늘어놓지 않는다. 초성·중성·종성을 하나의 네모 안에 모아서 한 글자를 만든다. 이것을 모아쓰기라고 한다.
결과는 단순하다. '이'와 '뻻'은 같은 크기의 네모를 차지하지만, 그 안에 든 획의 수는 열 배 가까이 차이 난다.
획밀도가 회색도를 만든다
한 글자에 들어간 획의 수를 , 글자 크기를 라고 하면, 그 글자가 지면에 남기는 잉크의 양은 대략
는 획의 굵기다. 라틴 알파벳에서 는 대체로 1에서 4 사이를 오간다. 한글에서는 2에서 20까지 벌어진다.
| 획 수 범위 | 회색도 편차 | |
|---|---|---|
| 라틴 소문자 | 1 – 4 | 작음 |
| 한글 음절 | 2 – 20 | 큼 |
| 한자 | 1 – 30 이상 | 매우 큼 |
그래서 한글 본문은 라틴 본문보다 줄마다 색이 더 많이 흔들린다. 받침이 몰린 문장은 진하게, 받침 없는 문장은 옅게 보인다. 이건 글꼴의 결함이 아니라 문자 체계의 성질이다.
Note
이 흔들림은 글자 크기를 키운다고 줄지 않는다. 의 분자와 분모가 함께 커지기 때문이다. 줄일 수 있는 건 행간뿐이다.
그래서 행간이 더 필요하다
라틴 알파벳의 표준 행간은 글자 크기의 1.4에서 1.5배다. 한글에 그대로 쓰면 좁다.
이유는 두 가지다. 첫째, 받침이 글자 아래쪽까지 내려와서 다음 줄의 윗부분과 시각적으로 부딪힌다. 둘째, 위에서 본 회색도 편차 때문에 눈이 줄을 따라가는 데 더 많은 여백을 요구한다.
실무에서 자리잡은 값은 1.6에서 1.8 사이다. 이 사이트의 기본값이 1.7인 것은 그 대역의 한가운데다.
한 줄에 몇 자를 담을 것인가
라틴 알파벳의 적정 행폭은 한 줄에 45자에서 75자다. 한글은 다르다. 한 글자가 라틴 두 글자 이상의 폭을 차지하므로, 같은 단 너비라면 한글은 절반의 글자 수로 채워진다.
는 단의 너비다. 672px 단에서 라틴은 약 70자, 한글은 약 35자. 그리고 한글의 편안한 범위는 25자에서 40자이므로, 라틴에 맞춰 잡은 단 너비가 한글에서도 대체로 맞아떨어진다.
Tip
우연이 아니다. 두 범위 모두 눈이 한 번에 훑고 되돌아올 수 있는 물리적 거리에서 나온 값이기 때문이다. 글자 수가 아니라 밀리미터가 기준이다.
라틴과 섞을 때
한글 문장에 영어 단어가 들어오면 두 가지가 어긋난다. 시각 중심선과 굵기다.
한글의 시각 중심은 네모의 한가운데에 있고, 라틴 소문자의 중심은 x-height의 절반에 있다. 베이스라인이 같아도 영어 쪽이 아래로 가라앉아 보인다.
굵기는 더 눈에 띈다. 같은 400 두께라도 한글 글꼴의 획은 라틴보다 굵게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. 본문에 영어가 자주 섞인다면, 라틴 쪽을 반 단계 굵게 잡는 편이 낫다.